개인적인 동기...


1.아픈 기억 중의 한 가지

국민학생 시절 이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지독하게 공부 못하는 애가 있었다.

게다가 지각과 결석이 잦고 지독한 말썽꾼 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아 취급을 받았었다.

우리들은 수업이 끝나면 보통 학교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데 그 친구는 한번도 그러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 그 날도 역시 학교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동안의 그 친구의 모든 행동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맹인이었고 그 아이가 그의 아버지를 부축하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렸단다.

그 일로 한 동안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그 아이도 그렇지만 맹인인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옛날의 그 마음 만큼은 아프질 않다. 아마도 세상의 더러움을 배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의외로 맹인을 비롯한 고통 받는 신체장애자가 너무 많은 듯 했다.

그리고 과학자들과 의사들에게 욕을 해댔다. 어떻게 그런거 하나 고치지 못하는지 ...

그런데, 어느날 할 짓이 없어서 형이 주로 보던 "학생과학(그 당시 이책은 상당히 좋은 책이었다.

나중에 이 책 출판사는 망하고 인수되어 만화책으로 변해버렸다.미쳐~~~)"이라는 과학잡지를

뒤적거리다가 그야말로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맹인들 볼 수 있다... 무슨 무슨 연구팀이 ..."

뭐 이런 기사였는데 내용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그림을 유심히 보니 사람(맹인)의 뇌 뒷 부분에

전극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전극에 신호를 주면 맹인이 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멋진 과학자들이다!!!

바로 이거야!!!!!

과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장래에 반드시 맹인들에게 보이게 해줄 것을 결심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까맣게 잊게 되었다.

2.물리학 에 미쳐서 지내다가...

흔히들 과학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국민학교 때는 플라모델,망원경 만들기 중학교 때는 납땜질(광석라디오 외에 수백종...),

그 당시 나는 그런 것이 과학자가 되는 길인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것 들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라디오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모터는 왜 도는지 등등... 왜? 라는 질문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왜? 라는 질문에 답을 해준 것이 고등학교 시절의 물리책 이었다. 어릴 적의 궁금하던

대부분의 것에 답을 해주었다. 나는 물리학이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어떤 신앙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마음속에는 앞으로 계속 물리를 공부하면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대학진학은 당연히 물리과로 향했다.

환상적인 1,2학년동안 정말 미친듯이 물리공부에 파뭍혀 지냈다. 단순히 물리공식이나 외운 것은 아니다.

뭔가 본질적인 이해를 하고 싶었고, (병적으로 집착했었다.)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왜 라는 것에 대한 답은 물리학의 어디에도 답이없다.

나름대로 답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만유인력 이다.

만유인력? 만유인력때문에 사과가 떨어지는가? 무슨 이런 귀신 시나락 까묵는 소리를...

이건 말장난이다. 이건 왜의 답이 아니다.(이 부분의 이야기는 상당히 길어 지므로 생략...)

어쨌던 물리학에는 왜 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고 모두가 어떻게 에 대한 답만이 있다. 즉, 돌이 떨어진다면

몇 초 만에 땅에 떨어지나? 전하가 진동하면 어떻게 전자기파가 복사되나?

그렇게 간절히도 원하던 답이 물리책에 없길래 방향을 바꾸었다.

책에 없다면 내가 한다.!

그 이후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단어 들을 시간적인 순서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의 이야기도 너무 길므로 생략... )

자연의 본질,존재와 비존재, 본질과 피상, 원인과 결과 , 공학과 과학의 차이점,

사람의 의식과 인식, 원숭이의 의식과 인식, 개의 의식과 인식, 쥐의 의식, 바퀴벌레의 의식,

해파리의 의식, 유공충의 의식,, 아메바의 의식, ....

아메바 인식 수준의 한계, 쥐의 한계, 개의 한계, 원숭이의 한계, 사람의 한계,...

어쨌든 길고 긴 생각 끝에 벽에 부딪힌 문제가 "인간 의식수준의 한계"가 되어버렸다.

요약하면

아메바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유공충이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해파리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바퀴벌레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쥐 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개 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원숭이가 가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세상 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이젠베르거가 옛날에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자연이 이해 될 수 있게끔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중략).

자연을 만든 질서와 법칙은 인간의 의식을 만든 그것과 같아서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사이비 종교 교주의 발언으로 보인다.

자연의 법칙 모두가 인간의 의식을 만드는 재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몇몇 인간은 자신의 의식수준의 한계를 깨어버린 듯한 사람 들이 있다. 그것은 기존의

지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부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해탈 한 후 세상(내가 보기에는 인간사의 세상이 아닌 아닌 자연인것 같다.)의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

어떻게 3년 동안 보리수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여 숨쉬고 밥만 먹고 지내다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나? 추측이지만 부다는 일반 인간 의식수준의 상승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비유하자면 , 명암 외에는 세상을 보지 못하는 아메바의 의식 수준이 사람의 의식 수준으로 되어 버린 것처럼,

해탈한 아메바는 일반 아메바를 보면 얼마나 멍청해 보일까 ? 해탈한 아메바에게는 일반 아메바의 빛의

명암으로만 만들어진 지식은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미 그는 명암 외에도 모양이라는 세상을 알고(느끼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히 인간의 정신세계가 하나의 화두가 되어갔다.

3. 도나 딱아?

차라리 물리책 덮어두고 산에 가서 도나 딱아?

그러나 이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한다는 소리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요런 말만 한다.

아마 자신도 그 방법을 모를 가능성이 많다.

이 시기에 여러가지 책을 탐독하게 되었는데 흔히 '초 자연적 '인 현상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초 자연 ' 이라는 용어이다.

보통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에 '초 자연 '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데, 이건 순전히 과학을 만든 이 들의

오만불손함의 극치이다. 현재의 과학이란 것이 도대체의 자연의 본질을 얼마나 밝혔다고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나?

결코 '과학 = 자연 '이 아니다.

'과학 < 자연 ' 이다.

'초자연적 현상'은 '초 과학적 현상' 내지는 '초 상식적 현상' 으로 바꿔야 한다.

아무튼 이런 정신 현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초 과학적인 것 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이 만들어 졌다.

이런 현상들은 전혀 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보통의 인간이 뇌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인식 수준 외에

더 많은 것이 뇌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95%에 해당 할 것 같다. 단순한 암기력 향상 같은 것 말고...

드물게 이상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나 부다처럼 특별한 방법을 이용하여 인식 수준이 상승한

사람들은 뇌 속에 새로운 회로가 형성 되었던가 또는 뇌의 OS가 바뀌었던지 뭔가 뇌 속에서의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4. 싸이코 피직스(Psycho - Physics; 미친 물리가 아니고 '정신 물리')

그래서 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기면서 생리학책에 나오는 뉴런부터 공부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잠시 배웠었지만 , 신선하고 재미 있었다.

예전에 여름 밤 옥상에 누워서 별을 볼 때의 기분과 유사하였다.

뭔가 신비로운 ...

계속 관심을 갖고 이 책 저 책을 찾아 보았지만 뇌와 관련된 괜찮은 책이 국내에는 전무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책들은 '뇌의 해부도 몇 장을 소개하고 뉴런은 요렇게 생겼다는 말을 하면서 그러니 뇌는 얼마다 대단한가'

무슨! 아니, 세포 덩어리 몇 개 그려넣고 어떻게 책을 팔아 먹는지... (한심!).

그러다가 책방에서 우연히 "신경회로망 모델의 기초" 라는 책을 찾게 되었다.

이 책! 상당히 쇼킹한 책이었다. 일본 사람인 '아마리 슈니치' 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매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신경회로망과 관련된 책은 대부분 전산학의 연장선에서 실제 응용면에 치중되어 쓰여져 있기 때문에 실제의 뇌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사람 책은 많이 달랐다. 뇌의 연구자 입장에서 신경망을 연구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는 신경망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web page는 Brain Information Processing Group.

주로 수업 시간에 뒷자리에 앉아서 교수 설명이 재미 없어지면 이 책을 꺼내보곤 했는데

뭔가 인위적으로 정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한 낮의 백일몽과 저 멀리서 들리는 교수님의 물리 용어들이 한데 섞이면서

새로운 학문이 태동 되었다.(개인적으로 )

"정신을 물리적으로 연구하고 .... 뉴런들의 결합법칙을 찾고 ..

인위 적인 결합에 의한 새로운 정신... 어쩌구 ...하는 새로운 학문. "

이름하여 정 ! 신! 물! 리 !

영어로 Psycho Physics !

싸이코 피직스 ??

미친 물리?

과기원 입학면접시험에서 교수들이 질문했다..

'자네 뭐 전공 할건가?'

'저...정신물리요..'

교수들이 모두 웃는다.

나도 웃었다.

5. 예전의 기억이 ...

이렇게 미쳐서 지내다가 나이가 차서 현재 이곳에 와서의 이야기다.

석사 1학년 입학식하고 일 주일쯤 되었다. 황량한 캠퍼스에 있기는

아까울 정도로 날씨 좋은 봄날 룸메이트하고 중앙 도서관에 갔다.(장하다!)

(사실은 이곳 교통이 좋지 않아 어디 갈수도 없었다.)

(참고로 룸메이트는 대학 때 부터 친하게 지내던 같은 과 1년 후배다. 그 친구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Bio-Physics(생물물리)를 하여 생명의 본질을 밝히겠다고

대학 때부터 그렇게 침 튀기며 이야기 하더니, 5년이 지난 오늘 거대한 NMR(핵자기 공명)장치에서

완두콩을 키우면서 비생명과 생명의 차이를 보겠다는 반은 미친 친구다. 졸업하기 힘들거 같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도서관 4층에서 공부하다가 어느새 배가 고파져 일찍 저녁 먹으러 내려 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도서관 정문 밖에서 우리 또래의 한 남자가 맹인용 지팡이를 들고 벽을 손으로 만지면서

몇 번을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정문을 찾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정문으로만 안내해 주었다.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괜히

상대방이 동정하는 걸로 생각 할까 싶어 그러질 못했다.

우리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도서관에 왜 가는 걸까?

그가 이곳 수학과 석사 과정 학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거의 까무러칠 뻔 했다.

사실 이곳 수학과가 만만한 데도 아닌데..

볼 수도 없는데 수학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

강의는 어떻게 소화해 내는지 ...

시험은 어떻게 보는지...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고는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밝은 성격이란다.

그는 항상 녹음기를 갖고 다닌다. 강의 시간에 칠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녹음을 해둔다.

그리고 녹음기를 반복해 듣고 그것을 이해 한단다.

모든 계산은 암산으로 한단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그 어려운 미분, 적분, 통계, .. 어떻게 암산으로 ...(나는 종이를 줘도 한참 걸린다.)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좌절하지 않음에 ...

그에게 축복이 있기를...

종종 그를 도서관에서 봤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있다.

항상 표정이 밝다.

그는 산책을 좋아 하는 것 같다.

과기원 내에서는 길이 익숙해졌는지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하루는 보도블럭 공사 때문에 인도를 사용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그 길로 향하고 있었다.

이내 쌓여져 있는 보도블럭 앞에서 더 이상 길을 가지 못하고 난처해 하고 있었다.

다행히 곧 그의 동료로 보이는 친구가 달려와 길을 안내해 주었지만, 그 상황을 본 나는 마음이

너무 답답해짐을 어쩔 수 없었다.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 순간 거의 잊어버렸던 예전의 결심이 생각났다.

국민학교 시절의 그 친구 ..

과학자와 의사들을 욕했던 ....

'나는 이 다음에 맹인들에게 보이게 해줄꺼야..'라는 국민학교 시절의 순수했던 다짐....

6. 맹인에게 눈을...

하기로 했다. 예전의 결심대로...

예전에 내가 욕했던 과학자의 모습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당시 '학생과학'이라는 잡지에서 보았던 그 기사의 그림을 떠 올려 보았다.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분명히 어딘가에 그 장치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저널에서 찾아야 할 지가 너무나 막막하였다. 그 출판사가 망하지만 않았어도

그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한다면 한다!

그 당시가 1979년경 이니까 전후해서 5년씩 10년치의 논문을 중앙도서관에서 전부 뒤져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난 학회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한다면 한다! God bles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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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1996년 10월 26일
배병훈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뇌 과학 연구실
E-Mail : bhbae@mul5.kaist.ac.kr